• 최종편집 2024-04-29(월)
 

 

디즈니 제작자 프랭크 토머스(Frank Thomas)는 이렇게 말했다. “Observe Everything. Communicate Well. Draw, Draw, Draw.”(모든 것을 관찰하세요. 소통을 잘 하세요. 그림을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리세요)

 

색소폰으로 소통한다는 뜻을 담아서 ‘색소통’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쇼핑몰을 계획했던 일이 있다. 막힘없이 순조롭게 사업이 이어지라는 의미도 담았다. 하지만 전공자의 눈으로만 바라본 색소폰 시장에서 고객을 잊고 있었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고객이 없는 일방통행은 결국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났다.

 

이번 호 테마가 ‘소통(疏通)’이라서 그날의 아쉬움을 잠시 떠올렸다.

 

소통의 시작은 존중에서 시작한다. 클래식 색소폰을 공부하던 시절, 다른 장르의 색소폰 연주는 듣지도 않았다. 하지만 전공자가 아닌 일반 동호인을 지도하는 강사로 20년을 보내면서 누군가 좋아하는 다른 장르가 지닌 매력을 알게 되었다. 그 다름은 결코 ‘옳고’ ‘틀림’ 또는 ‘고귀하거나’ ‘경박스러움’으로 구분할 수 없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내가 젊어서 집사람을 많이 힘들게 했고, 고생을 많이 시켰어요. 뒤늦게 정신을 차려서 열심히 일해서 주유소도 차렸고, 집도 직접 지었습니다. 하지만 둘 다 병을 얻어서 고생했습니다. 지금 저와 아내는 다리가 편하지 않습니다.”

 

색소폰을 조금 더 잘 연주하고 싶다며 찾아온 70대 중반의 남성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오랜 시간 했다. 그 시간을 레슨 받은 비용에 넣어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당시 나는 30대 후반으로 파리에서 클래식 색소폰을 공부했다는 자부심과 색소폰 장르에 대한 편견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영혼 없는 대답을 하고는 했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하고 “아내가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꼭 그 곡을 연주해 주고 싶습니다.”라며, 레슨의 목적을 말했다.

 

“어르신 저는 클래식을 공부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도하고 있습니다. 혹시 악사 출신의 강사를 소개해 드릴까요? 그리고 저는 동백 아가씨라는 곡을 연주해 본 적도 없습니다.”

 

“아니요. 꼭 선생님께 배우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기초와 기본기를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레슨을 시작했다. 서울 변두리 동호회에서 몇 년을 배웠다는 불편함과 뒤집어진 아랫입술 그리고 늘어진 저음이 거슬리는 것을 제외하면 정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성실하게 레슨을 받는 모범생이었다. 레슨이 끝나면 차 한 잔과 세상을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즐거운 이야기 덕분인지 날카롭던 나의 눈매가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기분도 들었다.

 

 

감동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온다

 

불편한 다리로 무거운 색소폰을 들고 지하철을 타고 레슨을 왔기에 개찰구까지 악기를 받으러 내려가고는 했다. 장애인용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다른 방향으로 이어졌고, 다시 돌아오는 것보다는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차라리 빨랐다.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와서 또다시 4층 건물의 계단을 올라오는 것은 다리가 불편한 70대에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50대가 되어서 잠시 생각했던 것 같다.

 

“선생님 오늘은 제가 부탁이 한 가지 있습니다. 가요를 연주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아서 집에서만 연습했는데, 아내의 생일이 곧 다가와서 동백 아가씨를 레슨 받았으면 합니다.”

 

수강생들은 보면대에 항상 ‘라코르 연습곡(Guy Lacour Etude)이 놓여 있었기에 레슨 시간에 트로트는커녕 발라드 한 곡도 연주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조심스럽게 부탁했을 것이다.

 

“제가 동백 아가씨를 잘 모르니, 어르신께서 연주를 한 번 하시면 어떨까요.”

 

주저 없이 시작된 동백 아가씨는 박자는 대충 맞았다. 첫 음부터 피치(Pitch)가 낮았고, 늘어진 음의 연결은 어린 시절 동네 야구에서 본 아리랑 볼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감동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진정성


작은 4층 연습실은 추위를 이겨내고 핀 동백꽃의 사연으로 물들었다. 가사도 정확히 몰랐지만, 누군가 가슴 저린 아픔과 그리움을 담아서 노래하는 것 같았다. 곡이 끝나고 손뼉을 크게 쳤는데, 그 충격이 촉촉하게 젖은 눈물을 바닥으로 날아가게 했다.

 

나는 “어르신 정말 너무 슬프고 감동적인 연주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고, 70대 수강생은 “아이고 우리 선생님 거짓말도 잘 하십니다.”라며 함박웃음을 보이며 손사래를 쳤다. 그 날 색소폰 연주는 어떤 연주자의 감성보다 훌륭했다. 정말 연주하기 싫은 날 부탁을 받거나, 모든 여건이 아쉬운 날이나 무대에서 감성의 필살기가 필요한 날이면 항상 그날 아침을 떠올린다.

 

연주의 소통, 다름을 존중

 

색소폰을 지도하면서 소통을 강요하는 실수를 많이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를 모두가 좋아할 것이라 착각도 했다. 나의 취향과 다른 장르에 대한 편견도 심했다. 특히 클래식이라는 이름의 음악을 색소폰에 담아서 공부했기에 누군가 나의 장르를 업소에서 연주하는 색소폰으로 여기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존중으로 시작하지 못한 일방적인 지도는 감동보다는 기능과 정보에 가까웠다. 연주도 누군가에게 크게 감동을 주기보다는 항상 변명을 달고, 꿈보다 해몽으로 억지로 소통을 강요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한동안 연주자 생활을 하지 않다가 우연한 계기로 매일 연주하는 일이 생겼다. 그 첫 연주는 20년 전 거리에서 콘서트를 하면서 불렀던 곡이었다. 마포의 작은 공원에서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불편한 자존심 하나로 리드의 두께를 탓하면서 연주를 했던 그 날이 떠올랐고, 그 부족했던 추억의 장면만 떠올리며 호흡의 인위적인 조절이 아닌 그 날의 풍경을 그리며 그동안 지내온 힘들었지만 감사한 삶을 담아서 연주했다.

 

관객에게 감동을

 

가장 첫 번째 관객이 큰 감동을 했다. 어떻게 첫 관객의 감동을 큰 감동이라고 말할 수 있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연주자에게 가장 큰 관객이며 누구보다 빠르게 연주의 감성과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연주를 하는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색소폰 연주는 그 첫 관객을 감동하게 할 수 있다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하고 싶다. 또 다른 관객이 감동할 진정성이 연주에 들어 있을 때, 색소폰으로 소통하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된다.

 

리드의 선택과 그날의 컨디션이 연주의 몰입을 얼마나 방해하는지 모른다. 때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연주가 트라우마로 자리한다. 그래서 최고의 마우스피스와 리드의 조합에 집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요소이며 소통 방법이 아니다. 나의 이야기가 담긴 연주가 가슴에서 잔잔하게 때로는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단순함을 알고 연주한다면, 연주가 위안과 즐거움 그리고 휴식을 경험하게 된다.

 

 

 



 송인권 Profile

 

 - 프랑스 파리 E.N.M.P 음악원 색소폰 전공

 - 서울시 교향악단 색소폰 객원단원

 - 총신대 출강

 - 현) 서울기독대학교 사회교육원 출강

 

(월간색소폰) 송인권 뉴사운드프로젝트 아티스트= msp@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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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으로 소통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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