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2011년, 그러니까 10년 전이다. 색소폰 공개강좌와 동호인 음악캠프는 항상 성공이었다. ‘모으면 모인다’라는 표현이 나왔다. 그때만 해도 이런 열기가 식을까 싶었다. 하지만 조금씩 색소폰 인구는 감소했다. 거기에 코로나까지 발생하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변했다.

 

코로나시대, 학원이나 동호회 매물이 점점 늘어간다. “색소폰 붐을 다시 조성할 뭔가가 필요합니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해결책을 찾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직업을 찾는 것이 빠르다는 말을 듣는다.

 

클래식 색소폰을 전공하고, 유학까지 다녀온 연주자들이 살기 위해서 어떻게든 버티려고 트로트 연주로 전향한다. 그야말로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표현이 느껴지는 유튜브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그들을 보면서 클래식 색소폰 전공자가 자존심도 없나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들의 연주에는 단지 생계가 아닌 지속적으로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과 연주에 대한 사랑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일 그렇게 행복하게 연주 영상을 제작해서 유튜브에 올릴 수 있을까 싶다.

 

코로나는 연주인과 강사에게 큰 피해를 줬다. 다만 긍정적인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정말 색소폰을 잘 알고 가르치는가?’ ‘내 연주는 감동을 주는가?’ 그리고 ‘혹시 누군가를 망치는 레슨을 하는 것은 아닌가?’라며 돌아보는 강사를 만났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매일 조금씩이라도 연습한다는 그의 말에서 희망을 본다.

 

색소폰의 계절

 

삶이 힘들어서 바라본 하늘은 가을을 보여준다. 가을은 색소폰의 계절이다. 누가 그렇게 말한 것도 아니지만 가을은 색소폰과 왠지 모르게 잘 어울린다. ‘고엽(Autumn Leaves)’과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을 색소폰 연주로 듣다 보면 더 그렇다.

 

고통스러운 코로나도 가을 색소폰의 낭만 앞에서 고개를 숙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미워도 함께 가야 한다면 위드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색소폰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서 다시 붐을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란다.

 

 

색소폰 연주와 담소를 나누는 주디 콘서트

 

작년 가을이었다. 유튜브를 찍던 연습실을 유지하기 힘들어서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그리고 처음 접한 당근 마켓에서 중고 집기를 모았다. 전기공사와 페인트칠 그리고 벽을 뚫어서 주방을 만드는 공사도 했다. 자본이 없으니 노동력이 이를 대신하는 잇몸이었다.

 

누구나 차리는 카페는 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한 정체성이 필요했다. 맛있는 음식, 질 좋은 커피 원두는 그야말로 벌판의 흔한 누런 소에 불과했다. 마케팅의 거장 ‘세스 고딘(Seth Godin)’의 말이 생각났다. “퍼플 카우(purple cow), 보랏빛 소가 필요해”

 

그 특별한 보랏빛 소는 매주 목요일 작은 음악회 ‘주디(Jeudi) 콘서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잔잔한 색소폰 연주와 담소를 나누는 토크 콘서트. 인맥을 활용해서 유명 연주자도 초청하겠다는 계획도 잡았다.

 

주디(Jeudi) 콘서트는 이름처럼 목요일에 시작하지 못했다. 비대면으로 관객은 없었고 홍보도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페를 찾은 사람이 색소폰 연주를 듣고 싶다고 말하면 흔쾌히 응했다. 색소폰을 꺼냈다. 주저 없이 손님이 원하는 곡을 연주했다. 신청곡에는 그들의 감성이 이미 자리했기에 연주는 더 쉬웠다. 돋보기로 종이를 태우듯 집중하며 손님을 관객으로 만들고 있었다.

 

 

즉흥연주로 위로 받는 고객

 

즉흥연주로 두 가지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고, 그 경험은 연주를 하는 날이면 계속 이어졌다.

 

우연히 카페를 찾은 사람들, 그들은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색소폰 연주가 시작되면 달랐다. 그들은 울었다. 과장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가슴이 들썩거릴 정도로 울기도 했다. 젊잖아 보이는 사람이 물개 박수를 치고 춤을 추었다.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공연장이 아닌 작은 카페에서......,

 

솔직히 조금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그럴수록 연주의 몰입은 최고조에 달했다.

 

두 번째 놀라운 사건은 클래식의 곧은 음이 진리인 나 자신의 변화다.

 

감성보다 음정이 우선인 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객의 눈물과 춤이 나의 연주를 점점 자유롭게 만들었다. 감동을 주려는 의도는 없었다. 다만 평생 진리라고 믿고 공부한 클래식 색소폰 연주법이 관객이 신청한 대중가요나 팝송의 가수 목소리를 기억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놀랐다. 진리가 색소폰 연주를 자유롭게 만들다니......,

 

노예로 팔려간 흑인들의 슬픔을 달래주었던 음악이 재즈였듯, 작은 카페를 우연히 찾은 동네 주민들에게 색소폰 연주는 삶의 재즈이며 위안이 됐다.

 

 

지친 영혼의 위안, 위드 색소폰

 

사람들이 좋아하고 찾는 이유는 단순했다. 어렵지 않은 노래, 자신이 원하는 노래를 연주자가 몰입해서 들려준다는 것이다. 내 고집으로 연주를 했거나 어려운 연주만을 했다면, 그것은 클래식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클래식 색소폰을 전공한 사람, 그것이 진리라고 믿었던 대중성 없는 색소포니스트는 삶을 연주하고, 노래한다.

 

위드 코로나, 위드 색소폰 비즈니스는 충분히 성공 가능한 퍼플 카우다. 당장 라이브 카페를 창업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의 연주에 분명한 진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진리는 가장 양심적인 연습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성실함이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 내 연주를 완성한다. 그리고 대중에게 다가서야 한다. 노예들의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는 그리 대단하지 않음이었지만 그 내면의 ‘소울(Soul)’은 진정한 지친 영혼의 위안이었을 것이다. 그 위안을 나누는 사람이 굶는 일은 신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리라 믿는다.

 

“이제 진짜 음악을 해봐”라는 지인의 말에 “먹고는 살아야 음악이 나오지요”라고 답했던 과오를 반성한다.

 

당신의 연주를 완성하는 귀중한 시간이 코로나 시대가 될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기다리는 위드 코로나는 그 연주를 누군가와 나눌 때 자유로워지리라 믿고 싶다. 그 자유가 당신의 색소폰 연주를 진리로 남게 해줄 수 있다는 기쁜 힌트를 주고 싶다.

 

무엇을 차리는 것, 어떤 무대를 꾸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연주에서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을 때, 서서히 모든 해결은 자연스럽게 곁에 온다는 꿈과 희망을 남긴다.

 

 

 



 송인권 Profile

 

 - 프랑스 파리 E.N.M.P 음악원 색소폰 전공

 - 서울시 교향악단 색소폰 객원단원

 - 총신대 출강

 - 현)서울기독대학교 사회교육원 출강

 

(월간색소폰) 송인권 칼럼니스트= msp@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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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공간에서 해답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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