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2018년 5월 18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였다. 혹시 공연이 취소되지 않을까 반신반의하며 도착했던 영동5교다리. 궂은 날씨 속에서도 떨리는 호흡과 손끝으로 몰입하며 오히려 내리는 비가 고마울 정도로 운치 있었던 음악회를 선사했었던 <굿피플동호회>에 대한 기억이 내게 선명하다. 무엇이 그들을 그런 진지함 속에서 색소폰을 연주하게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




개포동에 자리한 <굿피플동호회>의 연습실은 그야말로 깔끔했다. 뭔가 모범생 같은 분위기라고 하면 맞을까. 실제로 연습실에 들어가서 바로 눈에 보였던 풍경은 학습의 현장이었다. 둥그렇게 정렬하여 앉은 머리 희끗희끗한 학생들이 태도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 새로웠다.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자연스레 조심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모습을 담고자 셔터를 눌러댔다. 간혹 플래시도 터뜨리고, 자리를 이리저리 이동하며 사진을 찍었던 터라 그들에게는 방해가 됐을 법도 하지만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고 선생님만을 응시했다. 그런 분위기가 익숙해 보이는 선생님은 그런 학생들의 기대에 하나하나 응하고, 대답해주며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모습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 수업내용을 물어보니 앙상블수업 중이었다고 한다) 자칫 방해되진 않았을까 걱정하고 있던 와중에 앙상블 수업이 끝났고, 동호회 회원들은 제각기 자신의 악기를 소중하게 닦고 점검했다. 하루 이틀 그렇게 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들의 행동이 자유스러우면서도 지키는 것이 명확해 보였다. 단순히 어떤 단체나 모임에 존속되고자 사람들이 이곳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굿피플동호회는 2014년 11월에 만들어진 동호회다. 마음이 맞아서 시작한 13명의 회원이 뜻을 모아 선생님을 초빙하여 지금의 굿피플동호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은 주주회원이 22명이고, 일반회원이 13명으로 총 35명이 굿피플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굿피플이 가진 특징이라면 단연 ‘순수 동호회’라는 점을 들 수 있는데, 학원 형태가 아니다 보니 아는 지인들이나 혹은 지인의 소개로 들어온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는 동호
회 회원들끼리 별다른 말썽 없이 잘 지내 왔다고 한다. 봄이 되면 강남 양재천에서 5월부터 10월까지 매년 한 달에 한 번씩 공연하고, 연말에는 동호인들과 동호인들의 가족들이 모두 참석하여 무려 백여 명이 되는 사람들이 모여 송년 연주회를 한다. 그렇게 정기적으로 공연을 거듭한 지 6년 차 정도 되니 ‘진짜 음악’에 대한 갈증을 더 느끼게 되고, 반주기에 의존하지 않고 굿피플동호회만의 음악을 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듀엣부터 트리오, 그리고 앙상블까지 공연하기에 충분한 레퍼토리와 음악성을 키워서 관객들이 보기에 지루하지 않은 무대를 구성하고, 자신들끼리도 색소폰을 가지고 흥겹게 놀 수 있는 역량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종연 동호회 회장)
색소폰을 어떻게 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어떻게 해오고 있는지 말해 달라.

1998년도에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을 때였다.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어느 유명악기점에서 색소폰을 세일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언젠가 불겠지 싶어 세일 가격으로 천 불 정도에 구입했었다. 그러나 혼자 불려다 보니 좀 아니다 싶은 감이 있어 현지에 있는 색소폰 선생님을 찾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선생님 연세가 75세 정도였는데, 5살 때부터 악기를 배워 그때까지도 악단에서 활동하고 계신 베테랑이셨다. 그런 분에게 처음부터 색소폰을 배운 것은 행운이었지만, 미국인이다 보니 우리나라 가요를 배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직접 일반 가요 교재를 한국에서 사다가 색소폰 악보로 이조해서 직접 수기로 악보를 써나가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음악 이론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 좋은 계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98년도에는 고작해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불러보는 수준이었으니 색소폰을 열심히 했다고 볼 수 없다. 한국에 귀국했던 시점인 2000년도에는 회사 일에 매진하느라 색소폰을 불 기회조차도 만들지 못했었다. 2001년, 개인 사업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불다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은 2009년부터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색소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연습해오고 있다. 그에 비해선 색소폰 실력은 아직 미흡하지만 말이다.
원래에도 음악을 좋아했었나.

학교 다닐 때부터 팝송은 다 꿰고 있을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었다. 특히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음치에 속했다.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면 음이 틀렸다는 지적을 자주 받는 편이었다. 목소리로 음악을 잘 표현하지 못했기에 악기로 그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음악과 점점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악기점에서 악기를 우연히 사서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색소폰이 눈에 더 들어온 이유가 있었나. 평소에도 색소폰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물론 있었지만, 단순히 그냥 눈에 가장 들어온 것이 색소폰이었다. 당시에 색소폰뿐만 아니라 젬베라는 악기도 같이 샀었는데, 젬베에 그려진 문양들이 너무 예뻐서 산 것이다. 그 젬베도 여기에 가져다 놓았다.
젬베도 잘 연주하나.

반주기만 가지고 색소폰을 불다보니 박자에 문제가 생기더라. 박자 공부를 하기 위해
드럼 선생님을 찾아가 젬베를 배웠었다. 덕분에 박자를 이제 간신히 알겠다 싶은 정도에 온 것 같기는 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색소폰을 하게 되는 원천이 무엇인가.

대기업에서 회사생활을 한 지는 상당히 오래됐었다. 그때는 7시에 출근해서 새벽 한 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취미생활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나중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 마음속 어디엔가 잠재해 있던 것들을 표출하고, 그런 자유를 활성화하게 되는 것이 악기를 불게 하는 원동력이 되더라. 사실 색소폰을 불기 전에는 와이프와 같이 스포츠 댄스를 15년 정도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음악이 내게 낯설지는 않았다. 지금은 댄스스포츠 파티가 열리는 날이면 색소폰으로 블루스나 룸바 장르의 곡을 연주하며 흥을 돋우는 역할을 도맡고 있다. 이렇게 색소폰과 스포츠 댄스를 같이 접목해서 하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다.
색소폰을 배우는 과정에서 힘든 부분은 없었나.

생각했던 것처럼 연습이 되지 않거나, 또는 연주한 것을 녹음해서 들어보았는데 스스로 생각한 것과는 너무나 다를 때 색소폰을 과연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정도로 좌절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레슨을 받거나, 혹은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접하여 도전함으로써 슬럼프를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목표로 하는 곡이 있나.

어떤 곡을 완성해야지 하는 것 보다는 어떤 곡을 하든지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연주를 하고 싶은 것이 꿈이자 바람이다. 과연 평생 한 번 이루어 볼 수 있을지…. 이룰 수 없는 목표가 될 수도 있는 그런 꿈을 가지고 있다.

 

(최용인 사무총장)
동호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일반 학원이 아닌 동호회 회원들이 연습실을 다 같이 운영하고 있다 보니 누군가는 회비도 받고 지출도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총무, 회계 이런 것들을 도맡아 한다. 금년에 총무가 새
로 생기면서 나는 회계를 주로 하고, 동시에 동호회 운영에 있어서 상의할 부분들 혹은 연락 사항들을 관리한다. 나이가 있다 보니 총무라고 안 하고 사무총장이라고 불러준다(웃음).
자신만의 색소폰을 즐기는 방법이 있다면.

가수들이 무대에 서려면 천 번 이상 연습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완성도는 높겠지만 본인에게는 고통이다. 계속 같은 것을 연습해야 하니 말이다. 나 같은 경우 그렇게 는 안 하는 편이다. 좋아하는 노래가 있으면 이것저것 따라하면서 편안하게 하는 편이다. 그래서 곡으로 따지면 아마 우리 동호회 회원들 중에 여러 가지 곡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 중의 하나로 손에 꼽힐 것 같다. 특별히 어느 한 곡을 잘하진 않지만 여러 곡을 두루두루 한다. 무대에 설 때 떨리지는 않았는가.

무대에 섰던 에피소드가 있으면 말해달라.

긴장해서 그런 것인지 무대에서면 악보가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연습할 때에는 조금만 딴 생각하면 악보가 지나가 버리는데, 무대에서 연주할 때에는 집중이 더 잘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에피소드라고 한다면 한번은 공연하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 적이 있었다. 그때문에 우리도 못 가고, 관중도 못 가고 했던 일이 있었다. 

 

(이석재 동호회 회원)
색소폰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회사를 정년퇴직하고 색소폰을 한번 해보자 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 가요와 트로트를 즐겨듣고 좋아하는데, 색소폰이 가요와 트로트 장르에 맞는 소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색소폰의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꼈나.

색소폰을 불고있는 시간에는 색소폰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좋다. 음악을 잘 몰랐던 사람이었는데 악보를 보게 되고, 색소폰으로 노래가 된다는 것이 재미있고 신기했다. 색소폰을 하는 데에 있어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보통 사람들이 다 하는 만큼의 거북하지 않고 좋은 소리로 연주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처음 일 년 정도 불었을 때는 내가 제일 잘 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는데, 하면 할수록 더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음악의 깊이라는 것은 끝이 없는 것 같다.
목표로 하는 곡은 따로 없나. 꼭 하나만 집어 말해 달라.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라는 곡을 예전에 하긴 했었는데, 지금도 잘 못 한다. 그래서 더 해보고 싶고, <홍도야 울지마라> 같은 빠르고 경쾌하면서 여러 가지 애드리브가 들어가는 곡들도 해보고 싶다.

 

글·사진 Ι 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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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이 좋아서 모인 좋은 사람들, '굿피플동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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